
좋은글나눔터
| 제게 울림을 주었던 박동규 교수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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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 성 자 | 권남희 | ||
| 등록일 | 2022-04-22 오후 1:13:00 (HIT : 73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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핸드폰 메모장에 넣어두고 가끔씩 읽는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제 엄마를 그리고 아빠를 떠올리곤 합니다. 공유하고자 글을 옮겨 적습니다. 모두 늘 행복하시길 바라요! 내가 국민학교 6학년 때 6.25전쟁이 났다.
아버지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머니 말씀 잘 듣고 집 지키고 있어." 하시고는 한강을 건너 남쪽으로 가셨다.
그 당시 내 여동생은 다섯 살이었고 남동생은 젖먹이였다. 인민군 치하에서 한 달이 넘게 고생하며 살아도 국군은 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견디다 못해서 아버지를 따라 남쪽으로 가자고 하셨다. 우리 삼형제와 어머니는 보따리를 들고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남쪽으로 향해 길을 떠났다.
일주일 걸려 겨우 걸어서 닿은 곳이 평택 옆 어느 바닷가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전쟁 때문에 인심이 사나워서 헛간에도 재워주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집 흙담 옆 골목길에 가마니 두 장을 주워 펴놓고 잤다.
어머니는 밤이면 가마니 위에 누운 우리들 얼굴에 이슬이 내릴까봐 보자기로 씌어 주셨다.
먹을 것이 없던 우리는 개천에서 작은 새우를 잡아 담장에 넝쿨을 뻗은 호박잎을 따서 죽처럼 끓여서 먹었다.
호박잎을 너무 많이 따서 호박이 자라지 않는다고 집 주인이 다른데 가서 자라고 호통을 쳤다.
그날 밤 어머니는 우리를 껴안고 슬피 우시더니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남쪽으로 내려갈 수 없으니 다시 서울로 돌아가서 아버지를 기다리자고 하셨다.
다음 날 새벽 어머니는 우리들이 신주처럼 소중하게 아끼던 재봉틀을 들고 나가서 쌀로 바꾸어 오셨다.
쌀자루에 끈을 묶어 내가 메었고 어머니는 어린 동생과 보따리를 들고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올랐다.
평택에서 수원으로 오는 산길로 접어들어 한참을 가고 있을 때였다.
서른 살쯤 되어 보이는 젊은 청년이 내 곁에 붙으면서 "무겁지? 내가 좀 들어줄게."라고 하길래
나는 고마워서 "아저씨, 감사해요!" 하고 쌀자루를 맡겼다.
쌀자루를 짊어진 청년의 발길이 빨랐다. 뒤에 따라 오는 어머니가 보이지 않았으나 외길 이라서 그냥 그를 따라갔다.
한참을 가다가 갈라지는 길이 나왔다. 나는 어머니를 놓칠까봐 "아저씨, 여기 내려주세요. 어머니를 기다려야 해요."라고 하였다.
그러나 청년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그냥 따라와."하고는 가 버렸다.
나는 갈라지는 길목에 서서 망설였다. 청년을 따라 가면 어머니를 잃을 것 같고 그냥 앉아 있으면 쌀을 잃을 것 같았다.
당황해서 큰소리로 몇 번이나 "아저씨!" 하고 불렀지만 청년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나는 그냥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었다. 어머니를 놓칠 수는 없었다.
한 시간쯤 지났을 즈음 어머니가 동생들을 데리고 오셨다.
길가에 울고 있는 나를 보시더니 "쌀자루는 어디 갔니?"하고 물으셨다.
나는 청년이 쌀자루를 들어준다고 해서 맡겼는데 그대로 쌀을 지고 저 길로 갔는데, 어머니를 놓칠까봐 그냥 앉아 있었다고 했다.
순간 어머니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리고 한참 있더니 내 머리를 껴안고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애미를 잃지 않았네." 하시며 우셨다.
그날 밤 우리는 조금 더 걸어가 어느 농가 마루에서 자게 되었다.
어머니는 어디에 가셔서 새끼 손가락만한 삶은 고구마 두 개를 얻어 오셔서 내 입에 넣어 주시고는
"내 아들이 영리하고, 똑똑해서 아버지를 볼 낯이 있지." 하시면서 우셨다.
그 위기에 생명줄 같았던 쌀을 바보같이 다 잃고 누워 있는 나를 영리하고 똑똑한 아들이라고 칭찬해 주시던 어머니.
그 후에 나는 영리하고 똑똑한 아이가 되는 것이 내 꿈이었다.
내가 공부를 하게 된 것도 결국은 어머니에게 기쁨을 드리고자 하는 소박한 욕망이 그 토양이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나를 똑똑한 아이로 인정해 주시던 어머니의 칭찬의 말 한 마디가 지금까지 내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정신적 지주였던 것이다.
- 이 글은 현재 서울대학교 명예교수로 계신 박동규 교수님의 글입니다.
박동규 교수는 박목월 시인의 장남으로 서울대 문리대 국문과를 졸업 서울대학원 석, 박사를 취득, 문학평론가로도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후 서울대 국문과 교수로 임명받아 문학박사를 취득하고 토론토 대학에서 객원교수로 활동했으며, 월간 시 전문지 "심상"의 편집 대표도 역임했습니다.
절박하고 절망적인 전쟁 상황 속에서도 야단이 아니라 칭찬을 해 주었던 어머니의 한마디가 어린 아들의 인생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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